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제르론 요새 (문단 편집) === 대형 거점지의 필요성 === [[은하제국(은하영웅전설)|은하제국]]의 탄압을 피해 도망쳐온 공화주의자들은 수십 여년의 여정을 거쳐 민주공화제 국가 [[자유행성동맹]]을 건국하였다. 갓 탄생한 민주주의의 불꽃은 너무나도 작았고 제국의 손짓 한번에 간단하게 꺼질만큼 약했다. 다행스럽게도 은하제국은 백여년간 자유행성동맹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동맹은 국력을 기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양 국가는 무엇보다 [[장정 1만 광년|약 1만 광년]]이라는 엄청난 거리를 사이에 두고있던 탓에 갓 자라난 민주주의를 지킬 힘을 기를 수 있던 것도, 강대한 제국의 위협을 이겨낼 수 있던 것도 이 지리적인 요인이 큰 힘을 발휘해 준 것이다. 건국의 아버지 [[알레 하이네센]]의 가장 친한 동지이자 하이네센의 죽음 이후 사람들을 이끌었던 [[응웬 킴 호아]]가 정무 일선에서 손을 떼고 은퇴한 뒤 동맹 정부 요인들로부터 향후 국방 정책에 대한 조언을 요청받았을 때, > "제국 본토와 우리 공화국 사이의 거리가 최대 방벽이 되어줄 것이오. 거대한 야심과 재능을 품은 자가 시기를 얻어야만 비로소 이 방벽을 타파할 수 있을 터. 1세기 정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 ---- >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김완, 이타카(2011), p.199 라는 간단한 조언을 해주었다. 응웬 킴 호아의 말대로, 은하제국은 [[다곤 성역 회전]]에서 수백만 장병과 수만 척의 함정을 잃어버리면서 이 '방벽'의 강력함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원정군은 본거지에서 한참 떨어진 적지에서 지리에도 무지하고 통신도 원할하지 않은 채로 헤메다가 동맹군에게 포위당해 몰살당했다. 이후 동맹과 제국은 [[이제르론 회랑]]을 경계지로 두고 싸웠고, 자연스럽게 이 회랑에 요새와도 같은 대형 거점지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양국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가장 먼저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람은 [[프리드리히 3세(은하영웅전설)|프리드리히 3세]]의 이복동생 슈테판 폰 바르트바펠 후작이었다. 그는 다곤 성역 회전 직전에 열린 작전회의에서 이미 1세기 동안 '반도'들을 방치하였으니 성급하게 사태를 해결할 필요는 없고, 그 대신 제국령 내에 군사 거점을 구축하여 반도들의 침입을 막고 훗날 원정을 떠날 때 보급 및 통신 기지로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바르트바펠 후작은 원정계획을 반대하는 과정에서 황제 본인은 물론 골덴바움 황가와 은하제국 그 자체를 모욕하는 수준의 발언으로 황제의 진노를 사서 몰락해버리고 말았고, 그의 제안도 묻혀버렸다. 후작의 우려대로 제국군은 참패를 면치 못하고 수많은 장병들이 희생되고 말았다. 이후 '검붉은 6년'을 수습한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도 동맹 원정을 추진했지만 사법상서 [[오스발트 폰 뮌처]]가 은하계의 3분의 1에 달하는 방대한 인류사회를 무력으로 통일 지배하는 것은 어렵다는 '거리의 폭거'를 주장하면서 제동을 걸었다. 뮌처의 충고를 받아들인 막시밀리안 요제프는 동맹 원정계획을 파기하고 20년에 달하는 치세 동안 단 한 번의 원정도 나서지 않았다. 반면 그의 후계자인 [[코르넬리우스 1세]]는 뮌처의 충고를 무시하고 대규모 원정에 나서 동맹을 멸망시킬 뻔 했지만 궁정반란으로 인해 실패하였고, 제국은 또 큰 피해를 입어 대규모 원정에 나설 국력을 상실했다. 이후 전선은 이제르론 회랑에 고착되고, 그에 따라 이제르론 회랑과 그 주변 지역에 각 국가의 보급, 통신, 군사기지 등이 지어졌다. 그러나 이 기지는 소규모였으며, 가장 큰 기지도 주둔 병력이 4,000명을 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우주력 745년, 제국력 436년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제국군은 막대한 인재 손실을 보았다. 슐리터 대장, [[코젤(은하영웅전설)|코젤]] 대장 등 역전의 용장들 수십 명이 이 전투에서 몰살당했다. '군무성이 눈물을 흘릴 40분'이라고 전해지는 이 전투로 제국은 발상을 바꿔 [[이제르론 회랑]]에 거대한 요새를 구축하기로 결심했다. 제국력 454년, 은하제국 35대 황제 [[오토프리트 5세]]는 세바스티안 폰 뤼데리츠 [[백작]]을 책임자로 임명하여 이제르론 회랑에 '''이제르론 요새라 이름 붙여질 대규모 거점지'''의 건설을 명령하였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요새가 완성되는데는 4년의 시간이 필요했고 결국 제국력 459년, '이제르론 요새'가 완공되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돈이 들어서 짠돌이인 오토프리트 5세는 몇 번이나 공사 중지를 고민했고, 뤼데리츠 백작은 예상보다 많은 비용인 든 책임을 지고 자결했다. 이제르론 요새가 건설되기 20여년 전, 자유행성동맹의 명장 [[브루스 애쉬비]]도 [[이제르론 회랑]]에 요새를 건설할 목적으로 초보적인 요새 설계도를 국방위원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요새를 건축하는 데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했고, 애쉬비는 요새보다 함대를 중시했기에 이 설계도는 최고평의회가 함대전력 강화안을 인정하는 것과 맞바꿔 폐기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